제목 : 의롭다 인정받는 길
( 본문 : 로마서 4 : 13 - 25 절 )
1. 바울의 의인(匀效)의 교리
"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말 " 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말 중의 하나이다.
이를 " 匀效 " 또는 " 潷匀, " 또는 " 敭晦ヰ匀 " 의 교리라고 한다.
우리의 본문 로마서 4 : 22절은 이 교리를 분명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 그러므로 이로써 저에게 의로 여기셨으니, " 이로써 라는 말은 그의 믿음으로써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말은 사도 바울 자신이 말한 것이 아니고 "
창세기 15 : 6절 " 을 인용한 말이다. 즉,
"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 라는 구절에서 인용한 말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앞에서 의로운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다. 그리고 구원은 곧 영생을 얻는다는 말과 같다.
구원을 얻는 의로움은 율법을 다 지키는 자라야만이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율법의 모든 조항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죄인인
인간들에게는 성취할 수 없는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3 : 10 절에 "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 고 말하였다.
이 말도 역시 바울이
다윗의 시, 시편 14 : 1-4절에 있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도, 다윗도 인간이 스스로 의롭게 될 가능성은 율법의 행위로서는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낸 것밖에 없다.
그러나 바울은, 인간이 구원을 얻는 길이 전혀 다른 방향에서 활짝 열려진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열려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구원의 길이었다.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하나님앞에 설 수 있는 의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이 구약의 전부이었다. 곧 인간의 노력과 행위로는 하나님앞에 설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다른 것이다.
예화: 요한 웨슬레의 꿈
꿈속에서, 죽어 지옥에 갔다. * 여기에 감리교인이 있는가 ? 있다고 했다. 장로교인 ? 있다고, 침례교인 ? 있다고 천주교인 ? 있다고 했다.
계속하여 천국으로 갔다. * 여기에 감리교인 ?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장로교인, 침례교인, 천주교인 모두 없었다. 그래서, 그렇다면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이십니까 ?
굵은 목소리가 대답하기를,
" 천국에 있는 사람은 오직 어린양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뿐이요 ! " 라고 했다.
피의 구속은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에서 나온 용서하시는 사건이다.
이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 드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의롭다고 보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은혜와 믿음으로 이어지는 구원의 길은 구약에서도 이미 알려져 있었던 일이었다.
다만 유대의 율법주의자들이 이를 깊이 묻어버리고 감춰버리고, 율법주의로 바꿔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는다는 구원의 도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시대부터 이미 알려져 온 것이었다.
" 그의 믿음을 의로 보셨다 " 고 하셨다.
오늘 우리 본문은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되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옳다 인정받는 길의 두가지 특징을 살펴 보기로 하자.
2. 의롭다 인정받는 믿음의 특징.
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다.
본문 : 로마서 4: 17절에서, "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
19절은, " 그가 100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고
20절, " 믿음이 없어 하님의 약속을 의심치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절, "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절, "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
* 99세의 아브라함과 90세의 사라에게 옥동자를 낳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면 이루어지지 ! 의심할 것이 무엇인가 ? 우리는 지금 쉽게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이 그런 입장에 선다면, 사실 우리도 믿기 어렵다.
아브라함과 사라도 마음속으로 "웃었다" 고 하였다.
육신의 생각으로는 믿기 어렵다. 웃을 수밖에 없는 믿지 못할 약속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을 우리에게 요청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구원하신다는 복음을 생각해 보자 !
나는 어릴 때부터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동적으로 믿는 자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의 구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 예수가 죽은 것이 내죄를 씻겨 주는 것이 될까 ?
이해가 되지 않고 믿어지지 않았다. 이것을 참으로 믿지 못하는 사람이 오늘날에도 많다.
그러나 에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못하면 구원의 길은 아무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바울사도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고전 1: 23절에,
"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에게도, 그것이 없는 이방인에게도 모두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오늘의 말로 말한다면, 예수를 믿는다는 교인이나, 불신자에게 모두 믿기
어려운 것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믿기 어려운 일을 믿는 믿음을 우리에게 요청하고 계신다.
이 길이 곧 구원의 길이요,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하시는 길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지 못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과 축복은 그에게서 멀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는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는 왕이어야 하는데 십자가에 달려 죽은 죄수가 되었다는 것을 꺼린디는 말이다.
이방인들은 십자가에 죽은 사형수가 세상을 통일하고 군림하는 구세주기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의 목숨 하나도 구하지 못한 자가 어떻게 세상을 구원할 수 있겠는가 ?
그러므로 미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모두 육적이요, 세상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온 가장 당연한 생각이다. 우리의 생각과 얼마나 잘 통하고 이해하기 쉬운가 ?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르다. 그의 깊으신 지혜와 절대적인 능력은 사람의 것과
다르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크신 일은 받아들이는 믿음이라야 이해할 수 있다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 됬다 " 고 말씀해 주신다.
요한복음 6: 40절 : "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예수님이 선언하셨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믿지못할 것을 믿고 받아 드리는 축복의 길이 오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께 활짝 열리는 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화 : 사도 바울의 선교지 여행 ( 1994년 )
* 희랍 로마 문명권의 옛터를 찾아서 : 대리석 신전, 경기장 시장터 (아골라) 그리고 목용탕들,
하나님이 흔드시니, 모두 흙속에 묻혀서 2000년동안이나 사장되어 버렸다. 인간의 영화와
업적이 무엇인가 ? 인간의 굉장한 것, 하나님앞에서는 지극히 초라한 것이다.
* 아브리함이 일가족을 인솔하고 양무리들과 함께 팔레스타인 지방을 오르락 내리락 하던 그 믿음의 삶의 발자취는 오늘날에도 세계를 생동케하는 살아움직이는 영생의
삶으로 존재하고 있다.
한낮, 초라한 유적을 남기고 마는 인간의 삶을 살것인가 ?
영생의 삶으로 결코 없어지지 않는 믿음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 ?
오늘 선택하십시오 !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생명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됩니다.
내생각으로 살아 보겠다는 생각을 깨끗이 청산하고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 약속을 소망하면서 끝까지 견딜 것
로마서 4: 18절에, "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랐으니,..... " 라는 말씀에서,
의롭다 인정받는 믿음의 또 하나의 특징을 찾아 본다.
그것은 "바라본다" 는 말이다. 우리말, 晦癲 ( 신앙 )이랑 㩧挵는 두 말의 복합어이다.
晦 : 믿을 신 : 믿고 의지한다. 신뢰한다는 뜻이다.
癲 : 우러럴 앙 : 바라고 소망한다. 는 뜻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믿음의 두면이다. 육으로 믿을 수 없는 것이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실 줄 믿고, 그 약속을 끝까지 소망하면서 견딘다는 것이다.
소망은 믿음의 약속을 성취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소망을 가질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곧 그의 약속이 성취된다.
* 예화 : 기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영국 런던에, 요한 웨슬레 기념 예배당에는 요한 웨슬레가 늘 기도하던 기도단위에 무릎자리가 깊숙히 파여진 자리가 있다 한다. 누구나 그곳에서 무릎을 꿇어 본다.
산기도나, 성전기도에도, 은혜의 자리를 탐한다. 누가 은혜 받은 자리, 능력받은 자리라고
하면 서로 차지할려고 애쓴다.
기도원 이야기 : 어떤 사람이 기도제목을 가지고 열심히 부르짖으며 기도했다. 밤낮으로 열심히 했다. 그러나 아무리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는 것같아서 그만 중단하고 내려갔다. 그런데 그날 저녁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기도하다 놀라운 은혜와 은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은혜가 쏟아지는 순간 그는 떠나고 말았던 것이었다.
끝까지 견뎌서 나의 은혜의 축복을 뺐기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갈망하는 심령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였다.
마태 5 : 6절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자기들의 죽은 몸과 다를 바가 없는 상태에서 새생명이 태어난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고 소망하였다. 그리하여 기어코 사라에서 태어난 이삭을 가슴에 안게
되었다. 이삭이란 말은 '웃음" 이란 말이다. 끝까지 인내하고 소망을 붙들 때, 웃음이 온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약속되어 있는 영생의 약속을 끝까지 믿고 소망할 때, 분명히 천국에 갈
것을 믿고 바라볼 때, 영생을 얻는다.
이 점에서 아브라함의 믿음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닮음꼴이다. 끝까지 견디고 소망하여 새생명을 기쁨으로 얻는다는 점에서 같다. 하나님의 약속이 동일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소망하는 일에서 끝까지 헤아릴 수 없는 비밀,
곧 수수꺼끼의 한면이 간직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인내의 소망을 시험하기 위함이다.
지금도 우리는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이 다시 이땅에 찾아오신다는 약속을
신앙하고 있다. 이일에 대한 인간의 지식과 경험은 아무 해답도 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의 재림을 굳게 믿고 소망한다. 어쩌면 참된 그리스도인은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고 바라보는 소망으로 산다고 하여야 옳다.
고전 15 : 19절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거하였다.
" 만일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로다 "
이 소망을 진정으로 간직하고 살고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게 여기신다. 고 오늘
우리에게 주신 성경 본문의 말씀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지금 주님이 오신다면 ? 여러분은 준비가 되어 았습니까 ? " 아멘 !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 반기며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
예화 :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으로 들어가는 대문위에 크게 이렇게 쓰여져 있다.
" Abandon Hope !, 희망을 버려라 ! "
" You who enter. " 이곳으로 들어가는 모든 자는, "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바야흐로 암흑의 시대, 짐승의 시대, 요한계시록의 대환란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신문과 TV 방송은 날마다 지옥문이 열려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마귀는
이런 일들을 보고 들으면서, 그리고 또 몸소 당하면서 더 이상 벋히지 말라 ! 고 말합니다.
희망을 버리고 지옥문으로 들어가라 ! 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우리가 꼭 붙들고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를 믿는 " 믿음과 소망과 인내 " 를 하나님께서 옳다고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예화 : Frank Sabatino, 한 Aids 환자의 이야기 ( M. E. Marty, April 15 '93)
Frank는 Aids 환자로서 장기간 생존하고 있는 환자이다.
그의 Aids와 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 Hope, 희망 " 이라고 하였다.
" 희망이 나를 아직까지도 살게하고 있다.
의사는 3년만에 죽을 것이라고 진단하였지만,
나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계속 약을 먹고 의사를 만난다. 희망은 마치
나의 간호원이 어려운 약물치료중에 " Frank, " 라고 다정하게 불러주는 것처럼 나를
불러주고 나의 영혼을 붙들어 주고 나를 살아 있게 해준다.
나는 나의 투병을 통하여 의학적 사실들만큼, 영적인 경험들을 더욱 많이 경험하고 있다. " 고 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영적인 희망이 Frank를 꼭 봍들어 주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는
병상의 간증이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희망해야 할까요 ? 나의 소원이나, 욕망이 아니고,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일을 희망해야 한다. 그 약속을 끝까지 믿고 소망하며, 모든 역경과 환란가운데서 참고 견디며, 한거름, 한거름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약속은
꼭, 확실하게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몸에서 새생명을 이르키시고, 가장 비참하고 절망적인 상태에서 가장 위대하고 화려한 천국의 생명들을 창조해 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고난이 극심하고 소망이 끊어지고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까 ? 바로 그때가,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히 나와 함께 계시는 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까히 계실 때 찾고 부르라 ! 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 사 55 : 6절 )
요한 계시록 2: 25-26절,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일을
지키는 그에게는 만극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요한계시록 14: 12절,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하심을 받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