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2월 20일 주일)

 

제목 :   나의 멍에를 메라 !

 

( 본문 : 마태복음 11 : 28 - 30 절)

 

 

1.  내게로 오라 !

 

예화 : 새에게 날개를,

 

  하나님이 처음 새를 창조하셨을 때, 날개가 없었다.  그러나, 곧 날개를 만들어 새들 앞에 놓고, 모두 와서 이 날개를 어깨에 메어라 ! 라고 하셨다.

처음에 새들은 주저하면서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기를 싫어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므로 모두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무거운 날개들을 어께에 메었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이 날개가 더 커지면서 아주 몸에 찰싹 달라 붙어 버렸다.  그러나 얼마 후에, 이 무거운 짐은 창공을 마음껏 날라 다닐 수 있는

도구가 되었고 저들에게 어느 곳으로나 원하는대로 날아갈 수 있는 자유를 주는

날개가 되었다.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고 창궁을 훨훨 자유롭게 날아 다니게하는 자유를 주시려고

고난의 날개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한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난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직접 주신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복음선교 초기에 갈릴리 지역에서 많은 권능과 기적을 베푸신 이후에,

복음을 믿지 않는 완악한 고을들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다.  곧, 저들의 불신의 죄가

소돔 고모라성의 죄보다 더 악한 것임을 선포하신 (맡 11 : 24 절) 이후에 하신 말

씀이다.

 

이 말씀은 또한 죄와 불신의 세계에서 죽음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모든 인생들을 향하여 웨치신 말씀이기도 하다.

 

" 수고하고 무거웅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 " 하셨다.

 

* 수고와 무거운 짐의 이민생활

 

1. 육체적 고역 :

 

이민 와서 고역을 감당해야 하는 것, 우리 육신이다. 긴 노동시간, 힘에 겨운 무가운 것들,  콜라 궤짝, 채소, 과일궤짝 모두 무겁다.  볼티모어에서 Grocery를 오래한 분들 허리에 무서운 병들이 찾아 온다.

"수고" 라는 말, 손이 고생을 당한다는 말이다.   그 이외에도 오랜 노동시간, 밤잠을 못자고 일하는 것,  여성들의 경우는 더 힘들다.  이 모든 일이외에도  집안일을 돌보고, 식사준비, 세탁, 청소 모두 저들에게 겹친다.  여성들에게 2중, 3중의 노동이 겹쳐 있다.

 

2. 정신적 고역

 

육체의 수고만이 아니다.  정신적으로 얼마나 불안과 긴장가운데서 고통을 겪는가 ?

언어의 장벽, 문화의 차이로 오는 압력, 강도들의 위협, 자동차에 쓰는 신경들, 그리고 자녀들의 문제들, (교육, 결혼 직장 헤매는 자녀들,) 친구 및 친척간의 불화등, 그리고 마침내 노인문제에까지, 하나도 쉬운 것이 없다.  한국에 있다한들 이런 인생고가 없겠는가 ?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민생활은 그 모든 문제들이외에 더 많은 정신적, 육체적 고역이 겹쳐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이런 고역에 찬 우리를 향하여 들려즈신 예수님의 초청의 말씀이다.   곧,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 다 내게로 오라 ! " 라는 말씀이다.

 

 우리 이민생활의 모든 수고와 고역을 주님은 잘 아신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 다 내게로 오라 ! " 고  초청하십니다.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이  직접 이 말씀을 주셨던 당시의 갈릴리 호수 주변의  

사람들의 형편을 살펴 보십시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형편은 로마의 지배아래 있었습니다.  로마총독이 있었고, 씨자에게 뇌물을 주고 왕이 된 헤롯왕이 있었고 그 이외에도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또하나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3중의 세금과 세력아래 수탈을 당하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저들에게는 3중의 정치, 경제, 사회적인 무거운 짐이 메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더욱 큰 문제는 세상의 지배자들에게 당하고 있는 압박과 착취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보내신 그의; 아들을 믿지

않고 거절하는 마음의 짐들이 또한 무겁게 저들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저들의 완악한 마음을 아시고,   마태 11 : 21 절,

 

" 화 있을진져, 고라신아, 벳새다야 !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다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 "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은혜를 베푸는 동리에서, 은혜받지 못하고 오히려 저를 거절하는

완악한 마음이 저들에게 더 큰 문제였습니다.  저들이 당하고 있는 육체의 고난들위에, 사탄이 저들에게 메워 준 죄와 완악함의 짐이 더욱 저들을 짓누르고 있었음을 주님은 보셨던 것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욱 악한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지 못하게 하는 저들의 완악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완악한 마음으로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저들을 보셨습니다.

은혜의 현장에서도, 기적과 권능이 일어나는 현장에서도 주님을 믿지 못하게 되어 버린 굳어버린 심령들의 비참함을 보셨습니다.  죄의 짐을 지고 죽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죄짐의 가장 비참한 고역은 무거움을 모르게 되는 상태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 짐을 그대로 지고 가다가 끝장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와도

무김각하여져서 돌아설 줄 모르게 된 돌처럼 굳어진 완악한 마음들입니다.

 

어떤 이민가정의 자녀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우리 아빠는 Crazy 얘요 "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얘요 ! "  어쩌다가 이렇게 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다 못해 우리에게도 마비증이 육과 영에 일어나 버린 것이

아닙니까 ? 이민 초기에는 그래도 못살겠다, 괴롭다 하더니, 어느듯 심한 고역에 마비증이 된 듯 모든 것을 체념하고 기계처럼되어버려 생각없이 계속 바뿐 일정속에서 돌아가기만 하고 있습니다.  기계가 다 닳아빠져서 덜커덕, 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이랑곳 하지않고 달려가기만 합니다.  아마도, 이 생명 다 하도록 달려 가리라 !  결심하였는지요.

병이나도 병원에 갈 생각이 없습니다. 자녀들의 문제가 생겨도 속수무책입니다.

몸과함께, 정신과 영혼의 생명이 모두 말라빠져 완전히 인간다움을 상실하여도

I don't care 입니다.  가정이 파탄이 나 버려도, 신앙생활이 엉망진창이 되어도

아랑곳 하지않고 돌아가기만 합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 그런 맹목적인 맴돌이 생활을 하다가는 결국  소돔과 고모라처럼 끝장이 나고 말 것이러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 " 웨치십니다.  " 내가 너희를 쉬게하고 사람답게 사는 길을 열어 주시겠다고 "  하시며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깨닫고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 이것이 곧 사는 길입니다. 회개란 말은,

뉘우침과 도리킨다는 두 낱말이 합쳐진 말입니다.  뉘우친다는 말은 잘못을 깨닫고

애통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깨닫고 주님께로 돌아갈 때, 살길이 열립니다.

 

2. 나의 멍에를 메어라 !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곧 이어서 나의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다.

맡 11 : 29 절,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 " 하셨습니다.

 

수고와 죄의 짐에서 시달리는 자에게 쉬게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왜? 다시 멍에를 메라는 것일까요 ?

 

* 멍에는 짐을 쉽게 지고 가게하는 연장이기 때문입니다.  멍에없이 무거운 짐을 지면 곧 어깨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멍에는 인생의 모든 짐들, 육과 영혼의 짐들을 쉽게 지고 가게하는 도구입니다.

다른 말로 말한다면  마귀가 우리에게 지워주는 혹독한 고난과 수고와 시련들을 능히 이기고 대항해 나갈 수 있게 하는 무기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육체와 영혼의 무거운 짐을 지게하고 있는 있는 마귀도 사실, 우리의 몸이 아니고 우리의 영혼을 차지할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는 짐들중에는  언제나 육체의 무거운 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멍에는 이 모든 인생의 짐들을 가볍게 지고 가게 할뿐만 아니라,

육체에 힘을 주어 몸의 짐도 쉽게 감당하게 합니다  여러분 마귀가 지어주는 병과

쇠약한 몸을 가지고 인생의 짐을 지고 가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  아시지요.?

주님의 멍에를 멜 때 죄악의 짐도 가벼워지고 육체의 건강과 능력도 주어져서 쉽게

세상의 일도 감당해 나가도록 히신다는 뜻입니다.

 

* 예수님의 멍에 "

 

 예수님은 나의 멍에를 메라 ! 고 하십니다. 이 "나의 멍에"는 예수님 자신이 메고 가는 것입니다. 에수님이 솔선수범하여 메고 가시면서 실제적인 삶을 통하여 본을 보여 주시는 멍에입니다.  이 멍에는 우리에게 두가지의 삶의 태도를 가르쳐 줍니다.

 

가) 온유의 멍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니.....,  첫 번째 멍에는 온유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이사야 선지는,  사 53 : 7절에,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

 

온유의 멍에는 쉽고 또한 쉼을 얻는 멍에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 온유의 반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온유의 반대말은 사나움 또는 광폭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사나움과 광폭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들은 언제나 나를 해칠려고하는 원수들에게 쌓여 사는 긴장과 불안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서부활극에 나오는 Gunman 들처럼 잠시도 마음을 놓고 살 수 없습니다.  이런 긴장상태의 연속을 Stress 라고 말합니다.

현대의학에서는 이 Stress가 모든 병의 원인이라고도 말합니다.  

예수님의 온유한 마음은 약한 것 같고,  지는 것 같으나 실상은 강하고 고난의 인생길에서 승리를 얻게하는 가장 귀중한 비결의 하나입니다.

d猀라고 하는 한자의 뜻은 따뜻하고 부드럽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따뜻한 정과

동정하는 마음을 뜻하며, 의심하고 공격하기보다는 이해하고 신뢰해 주는 마음을 뜻합니다.  "猀" 라는 말은 너그럽고, 부드러움 마음으로 감싸 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마음을 뜻합니다.  냉정하게 반성해 볼 때 우리들은 이 온유한 마음을 소유하지 못하고 오하려 사납고 거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 그래서

인생의 전쟁마당에서 계속 마귀에게 패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

예수님의 말씀대로 온유의 멍에를 메어 보십시다.  인생은 쉽고 승리의 개가를 올리게 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 예화 :  햇님과 바람의 시합 : 외투를 벗기는 쪽은 따뜻한 햇볕을 보내준 햇님이

          었다.

 

 

나) 겸손의 멍에

 

또하나의 예수님의 멍에는 겸손의 멍에입니다.  온유와 겸손은 항상 함께 붙어 다니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가 온유하고 온유한 자가 겸손합니다. 그러므로 한멍에 안에 있는 두가지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겸손이라는 뜻을 표현하는 영어 단어 중에  " Humble "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 Humur " 곧 땅이라는 뜻의 어원에서 시작된 말인데 곧 땅에 납짝    엎드린다는 뜻에서 온 말이라고 합니다. 엎드리고 낮아지는데서 예수님의 멍에는

빛을 발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점점 더 인생의 짐을 무겁게 지고 가야합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인생의 고난의 길에서도 쉼을 얻고, 승리하며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십자가를 앞 둔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 극치를 이루었습니다.

 

 마태 26 : 39 절에,

 

"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 기도하시며 자기의 소원을 완전히 포기하였을 때, 겸손의 극치가 이루어졌습니다.  겸손이란 나의 소원과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의 뜻이 내게서 이루어지도록 나를 몽땅 내어 놓을 때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예수님의 겸손의 멍에입니다.

우리에겐 주장도 많습니다. 의견도 구구합니다. 열사람이 모이면 열가지 의견과

주장과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각자의 생각들만 가지고서는 분쟁과 다툼,

그리고 분렬과 싸움이외에 일어날 것이 없습니다.  불평과 미움, 시기 질투가운데서

평안한 날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왜 ? 자기의 뜻만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겸손의 멍에를 우리 모두가 메고 주님을 섬길 때, 참된 쉼이 있고 평안과 기쁨이 있고 사랑과 화합이 이루어집니다.

 

주님의 뜻에, 내 뜻을 온전히 복종시킬 때 행복이 있습니다. 육신의 건강도 있습니다. 정신과 영혼의 건강도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사회의 평화와 부흥도 있습니다.   쉬는 것은 그러므로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새로운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온유와 겸손의 새로운 믿음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 예화 : 죽음의 공포에서

 

병으로 인하여 죽음을 가까히 마지한 사람이 비록 그는 거듭난 그리스챤이었으나, 의사에게 죽음이 두렵다고 솔직히 말했다.  역시 독실한 그리스챤이었던 의사는 그

에게 줄 수 있는 좋은 충고를 갖지 못했다.  그 때 갑자기 끙끙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을 긁어대는 소리가 났다.  의시가 문을 여니, 그의 사랑하는 개가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의사에게 달려들며 기뻐했다.   이 때 의사의 마음에 환자를 위로할 말이

생각났다.   " 제 개는 당신방에 한번도 와 보지 않았습니다. 허지만, 제가 여기 있기 때문에 조금도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게 이 방에 들어 왔습니다.  그와같이 아마도

당신이 하늘나라에 가셨을 때에도 천국사정은 제가 잘은 모르지만,  분명히 우리 주님 예수님이 거기 계실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주님이 거기 계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  이 개도 이 방이 낯설지만 주인인 제가 있으니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같이  당신도 조금도 낯설거나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사는 사람에겐 그 짐이 조금도 힘들거나 불안하거나 괴롭지 않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괴롭고 힘들더라도 길은 쉽고 평안하며 축복된 그 나라를 향하여 승리하며 나갈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이 멍에를 메십시다. 그리고 주님안에서 새로운 은혜와 믿음의 걸음으로 승리하며 전진하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