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천국 헌장 !
( 본문 : 누가복음 6 : 17 - 26 절)
1. 바닷 가 설교 : 마태복음 5장에는 산상수훈, 그러나 누가에서는 바닷 가 설교이다.
* 마태는 9가지, 또는 8가지의 축복의 길을, 그러나 누가에서는 더 쉽게 세가지 또는 네가지로 요약하였다. * 누가는 복과 화로 대조하여 설명하였다.
* 3 가지 복과 화
복 화
1. 가난한 자 : 하늘나라의 소유자. 1. 부요한 자 : 이미 위로를 다 받았다.
(이제 주린 자 : 배부름을 얻는다.) (이제 배부른 자 : 주릴 것이다.)
2. 이제 우는 자 : 웃을 것이다. 2. 이제 웃는 자 : 애통하며 울 것이다.
3. 인자를 인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아 ! 3.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자여, 네게
기뻐하고 뛰어 놀라 ! 하늘의 상이 화가 있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
크다. 조상과 선지자들이 받은 상을 자들에게 한것들이니, 거짓 선지자들의
받을 것이다. 받을 형벌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축복과는 정반대의 내용이다. 잘 해석하고 깊이 헤아려 이 말씀의 참된 뜻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 저자 누가는 사도 바울을 평생 수행하며 그를 가장 가까이 모셨던 사람이었다.
그는 의사라고도 하고 화가였을 것이라고도 성서학자들은 말한다. 또한 그는 위대한 문필가요 저술가이다. 바울과 함께 이방선교의 선두주자로서 예수님의 전기를 평생 모은 재료들을 총동원하여 저술하였으며, 누가복음의 후편으로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이기도 하다. 복음을 전 세게에 선교하는 것을 예수님이 주신 제자들의 최고 의 사명이라고 믿고 평생을 복음선교에 헌신하였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본문인 누가복음의 천국헌장의 내용을 복음선교자적인 입장에서 살펴 보아야 한다.
크리스챤들에게, 참된 축복은 무엇이며, 화가 되고 저주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
오늘 우리의 본문이 밝혀 주는 것을 통하여 상고해 보자 !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약속이 있는 말씀이다. 그래서 이 성경을 신약, 구약이라 함은 곧 새약속과 옛약속이라는 뜻이다. 약속이라고 말할 때, 이 말씀은 지키는 자에게
축복이 되고 어기는 자에게는 무서운 화와 저주가 되기도 한다.
모세는 신명기 30 : 19 절에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오늘 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 하였다.
인용 : "성서의 지혜와 철학" 저자 마빈 토케이어, 뉴욕에 거주하는 유명한 유대인
납비이다.
* 선택받은 백성 이란 제목아래 다음과같이 썼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라 라고 하신 창세기 15장 13절의 말씀을 해석하여,
" 비록 유대인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안락한 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시련을 참고 이겨, 사람들에게 봉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만일 이런 일이 없다면 유대인은 세계의 다른 민족보다도 우월
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어 거만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구절은 유대인이 세계로 흩어져 버리기 이전에 쓰여진 것으로서, 이 예언이 대단히 잘 맞아 떨어지고 있다. 유대인은 자기네들이 유일신을 믿고, 다른 백성이 우상을 숭배하고 있을 적에도 우월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것은 자기네들이 선택된 민족으로서
자만심에 빠져 있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라고
했다.
선민의 특권은 사명의 특권이지, 세속적인 복을 주렁주렁 매달아 주는 축복이 아님을 갈파하였다.
*세가지 복과 화를 생각해 보자 !
첫째로 이제, 가난한 자, 주린자, 우는 자, 핍박을 달하는 자,들이 복있는 자라고 했다.
이제, 라는 말은 현재 바로 지금 여기에서 당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어째서, 주리고 가난한 자들이 복이 있고 배부르고 부한 자, 칭찬받는 자들에게는 화가 있는가 ?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부르셔서 복음의 사명을 주신 자들이 걸어가야 할 사명자의 길에서 이 말씀을 생각 할 때 올바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천국건설의 일꾼이 되기 위하여 걸어가야만 하는 고난의 길을 생각할 때 이말씀의 참 뜻을 깨닫게 된다
1) 가난한 자, 주린 자들의 축복
가난한 자는 항상 자기가 가진 것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천국을 건설하는데는 무진장한 재물이 필요하다. 그 일을 성취하는데에는 우리가 가진 것은 간난한 자의
재물밖에 되지 못한다.
* 예화 : Oversea Mission 의 총재 :
영국에서 작은 공장을 운영한다. 그러나 그는 집도 없고 물론 가족도 없다. 공장 한구석이 선교부 사무실이고 그가 숙식하는 집이다. 회사에서 나오는 모든 수익금은 전액 선교부로 들어간다. 10 ; 1조를 떼어 내놓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항상 가난하다. 목숨을 걸고, 공산권으로 회교권으로 드나드는 선교사들의 자금을 대어주기 때문이다.
* 고아의 아버지, George Muller : 오직 기도로서 독일인으로, 영국에 가서 평생
고아들을 돌보았다. 그 당시 700만불은 말할 수 없는 거금이다.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으로 그에게 주신 천국자금이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가난하였다.
어떤 날은 200여명의 고아들과 함께 아침 먹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모두
아침 밥상에 앉으라 하고 자기는 기도실로 들어 갔다. 하나님께 아침을 주시라고
기도했다. 제시간에 빵공장에서 빵이 배급되어 아침을 먹게 하셨다. 그리스챤은
700만불을 가진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 가난은 돈의 액수로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다. 주의 일을 할려면 언제나 모자름을 경험하는 가난이다.
* Washington D.C. 안에 있는 중국교회에서, 저녁집회 간증시간에, Homeless 들에게 사랑을 주고 격려하고 있는 사람의 간증이었다. 그런데 그 자신도 추운 겨울에 잘곳이 없는 Hpmeless 였다. 예수님께서 이곳에 오신다면, 지금도 천국이
저들의 것이라고 하실 것이다.
* 이제 배 부른자들은 누구인가 ?
한국에서 보리고개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배고픈 것이 무엇인가 ? 를 안다.
그러나 미국에 와서 배고프다는 것은 멀리 떠났다. 이제는 우리도 너무 먹을까보아 겁을 내면서 먹는 신세가 되어간다. 이제 배부른자들의 부류에 들어가고 있지 않는가 ? 세계 도처에서 어린것들과 함께 식탁을 작만하지 못하고 굶어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음을 생각할 때, 어쩐지 우리가 잘못된 부류에 속해 있지 않은가 ? 자신에게 물어보곤 한다.
그러나 이제 배부른 자들이라는 말은 먹는 일보다 더 근본적인 삶의 태도를 가르쳐 말한다. 현재의 만족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지적하는 말이다.
이만하면 되었으니 먹고 마시고 놀아보자 ! 는 생활태도를 말한다.
누가복음 16장에 있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이를 잘 알려주는 예수님의 비유이다.
눅 16 : 25 절, "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살았을 때 너무 즐거움과 좋은 일을 많이
받는 것이 사실 그렇게 달갑지 않다. 그렇다면 억지로 즐겁지 않은 생활을 해야
할까 ? 아니다. 천국건설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즐김의 시간들을 줄여 가면서
사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는 말씀이다.
* 천국사명도 감당치 못하면서, 고행을 일삼으며 자기를 괴롭게 하므로서 하나님께 상을 얻겠다고 하는 신비주의적인 생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 유명한 심리학자 Karl Meninger 박사의 말
" Attitude is more important than fact. " " 삶의 기본 자세는 사실보다 더 중요하다 " 고 말했다.
다시말하면, 현재 내가 얼마를 갖고 있거나, 어떤 학위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 삶을 진실하게 살아가야 할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삶의 기본자세가 우리의 삶을 위하여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현세적인 것들만 귀하게 보고 예수님이 명령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할 때, 이제 배부른 것으로 삶을 끝내고 마는 화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2. 이제 우는 자 와 웃는 자.
기독교를 가르쳐 고난의 종교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은 웃으며 살라 ! 고 한다.
모두가 다 맞는 말 같다 그러나 세상의 웃는 일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들인가 ? 를
우리는 잘 안다. 세상사람들은 울어야 할 때 웃고 웃어야 할 때 울 때가 많다.
* 예화 : Allan Delong 이 출연하는 있는 영화에서
주인공 Allan Delong 이 boat를 타고 바다로 나아가서 희생자를 죽이고 밧줄에
돌을 달아 바다속에 쳐 넣는 완전범죄를 끝내고 막대한 재산을 차지하게 된 순간
애인과 함께 바닷가에서 술잔을 들고 자축하며 웃는 순간에, 의심하여 따라온 경관
앞에서 Boat 에 걸려 떠 오른 시체로 말미암아 체포되고 만다.
그는 참으로 울어야 하여야 할 때 웃고 있었다. 하나님없이 성공한 인간의 일들이
일들이 이런것들임을 알아야 한다.
기쁨과 웃음의 순간이 0.2초도 못되는 것들을 기뻐하며 웃고 있지 않은가 ?
* 예화 : 0.2초의 물고기 기억력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제 우는 자들은 어떤 사람을 가르치고 있을가 ?
천국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울고 있는 사람들을 가르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을 보며 긍휼과 연민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인생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다 하셨다.
시편 103 : 13 에, "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
마태 23 : 37 절에, 예수님도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 " 부르면서 탄식하셨다.
"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아래 모음과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
하나님의 긍휼이 여기심과, 예수님의 탄식하시는 일이 바로 이제 여기서 우는 성도들의 눈물의 근원이다. 이런 사람들이 복된 사람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복음전파를 위하여 밤이나 낮이나 큰 탄식으로 기도하며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을
위하여 흘리는 전도자들의 눈물을 축복하시고 그 눈물의 터전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된다. 우리는 참으로 눈물을 흘리며 간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집안에도, 집밖에도, 교회안에도, 교회밖에도, 도시안에도, 도시밖에도, 나라안에도 나라밖에도, 온세게에 예수 구원하심의 기쁜 소식을 갈망하고 있는 죽음의 쇠사슬에 묶여 신음하고 있는 영혼의 호소를 들을 수 있는 영의 눈과 귀가 열려있는 에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눈물과 사랑의 고통이 싸여있는 터전위에 건설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본문이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의 핵심이다.
시편 126 : 6절, "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 " 하였다.
3) 핍박솨 칭찬
눅 6 : 22 절, "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멀리 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
반면, 26절에는, "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너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같이 하였느니라. "
이 두 구절은 모두 선지자라는 말에 관련되어 있다. 참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들이다. 이 사명은 결코 세상에서 영광과 환영을 받는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핍박과 조소와 반대에 부딪쳐야 하는 자리이다.
선지자 예례미아는 마른 우믈속에 갇혀 굶어 죽을 번 하였으며, ,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선언하였기 때문에 언제나 반대와 적의에 맞부딪쳐야 했다.
사도 바을도 수없는 고난을 받아야 했다. 고후 11 : 23 - 24 절,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아, 여러번 죽을 번 하였으니 , 24, 유대인들에게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 !!!! "
예수님을 위하여, 그의 복음의 사명을 감당키 위하여 핍박을 받고, 미움을 사고 배척을 당하면 복이 있다. 예수님이 저들을 알아 주시고 축복해 주신다. 주님은 그가 맡기신 사몀을 위하여 끝까지 견디며 모든 고난을 달게 받는 제자들이 필요하시다.
이일은 참으로 어렵다. 그러므로 주님을 잘 섬기다가 너무 어려워서 떠나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고난과 어려움속에 주님이 약속하신 놀라운 축복이 감춰 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후퇴하지 마십시다. 뒤돌아 서지 맙시다.
눅 6 : 23 절, "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
주님이 기뻐하고 뛰놀라고 하셨는데 왜 ? 우리는 낙심하고 주저앉습니까 ?
하늘의 상이 크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이곳의 칭찬과 상급만 바라보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
주님은 칭찬을 받으면 오히려 화가 있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얼마나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일에만 신경을 쓰고 있습니까 ?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하여 선전하고, 광고하며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습니까 ? 소위 소문난 교회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없는 일까지 만들어 내어 선전하고 있는 세상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
우리 주님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는데, 웬 자랑꺼리가 그렇게 많은지요 !
주님은 세상에서 칭찬을 받는 자들은 " 거짓 선지자들 " 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유명한 목사님은, 교역자 수양회를 인도하면서 "십자가 설교를 하지 말라" 고
하였다 합니다. 이유인 즉 십자가는 적극적인 이미지보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은 분명히, 복과 화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제 웃는 자는 울것이요, 이제 우는 자는 웃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자가, 우는 자가, 복이 있고, 이제 부한 자와, 웃고 있는 자에게 화가 가다리고 있다 하였습니다.
지금 욕을 먹고 핍박을 당할지라도 우리 주님을 위하여 올바르게 살고, 복음의 사명을 위하여 고난을 즐겨 받으며 주님안에서 복된 삶을 사십시다.
사랑하는 부르클린 성도 여러분 ! 우리 모두가 주님께 부름받은 축복의 사람들이
되십시다 !
고난과 어려움속에서도 주님 주신 천국건설의 사명을 굳게 지키며 모두
함께 우리 교회를 주님의 천국으로 이룩해 가는데 함께 일하는 거룩한 사명의 동지들이 되십시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