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물가의 한 여인
( 본문 : 요한복음 4 : 1 - 30 절)
* 예화 : 동기
큰 길가운데 큰 진흙 구렁텅이가 생겼다. 그런데 한 개구리가 실수하여 그 구렁으로 빠졌다. 아무리 뛰어 나올려고 하여도 진흙탕이어서 할 수 없었다. 동료 개구리들이
몰려왔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모두 "별 수 없구나 ! 딱하기도 해라 ! " 말하면서
가 버렸다. 그런데 그 이튿날 보니, 그 개구리가 아무일도 없었던 듯이 연못가를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개구리들이 물었다. "어떻게 된거야 ? 그 큰 진흙 구렁에
서 용케 빠져나왔구나 ? " 물었다. 그 개구리가 대답하는 말이 물론 내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었어. 그러나 큰 추럭이 달려오고 있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뛰어
나오지 않으면 안되었었지 ! " 라고 대답하였다.
뛰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서 추럭의 달려오는 소리는 개구리에게 자기에게 없는 힘을
주어 뛰어 나오게 하였다.
본문이 전해주는 예수님을 맞났던 한 여인의 이야기도 죽음에서 삶을 얻은 점에서
이 개구리 이야기와 통한다.
인류의 큰 사건들은 맞남을 통하여서 일어난다.
* " 애국자를 찾음 "이라는 신문광고를 보고 개나리 봇짐을 메고 먼길을 걸어 찾아 간 한소년이 광고를 낸 한 청년을 맞났을 때 중국의 역사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모택동과 주은래의 맞남이었다.
우리의 본문은, 뜻하지 않게 하나님의 아들을 우물가에서 맞나, 죄와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영생의 삶을 얻은 한 여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이야기의 줄거리 :
때 : 제 6시, 당시 유대의 시간으로 6시는 오늘의 정오 12시를 말한다.
곳 : 야곱의 우물가에서, 유목민들의 재산목록 제 1호는 우믈이다. 조상 야곱이
소유했다는 대를 물려 내려오는 사마라아 인들의 우물터였다.
내용 :
행객 예수 : 유대인은 사마리아 땅을 밟기 싫어서 광야로 돌아 갔으나,
예수는 의도적으로 사마리아로 통행하고 있었다.
요한 4 : 4절, "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 라고 했다.
요한 4 : 6절, " 행로에 곤하여 우물곁에 앉으시니 "
예수는 피곤하여 잠시 우물가에서 쉬고 계셨다. 시장하시고 목마르셨다
물길러 온 여인 : 뜨거운 태양볕이 내려 쪼이는 12시의 사막길에 약 5리(2 km)
를 걸어 홀로 우물가에 온 여인, 사람들을 피해서 물을 길러 와야하는 속사정이 있는 여인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님을 맞나게 되고 그와의 대화를 통하여 놀라운 새삶을 얻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다.
어떻게 이 여인은 이런 축복을 받게 되었나 ? 우리 본문이 전해 주는 이 여인의 예수님과의 맞남의 이야기를 통하여 생각해 보자 !
* 예수님과 나눈 대화의 세 단계
1. 첫 번째 단계 : 적의에 찬 여인.
* 예수의 물을 달라는 요청 :
우물가에서, 목마른 나그네가 물을 달라는 요청은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일이었다. 누구나 겪는 육적 갈증의 요구였다.
* 예수는 우리의 평범한 삶의 현장에 찾아 오신다. 4절에, "통행해야 하겠는지라!"
라는 말속에, 사마리아 전도와 구원의 큰 뜻이 이미 내포되어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일상의 생활속에 찾아 오시는 예수님을 우리는 어떻게 맞고 있는가 ?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해 준 착한 일이 곧 나에게 한 일이라고 주님은 말씀하
셨다. (맡 25 : 40절).
여인의 대답 : 적의에 가득 차 있었다.
* 어찌하여 유대인인 당신이 사마리아인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는가 ?
요즘 말대로 한다면, 민족차별 (Racism), 성차별 (Sexism), 그리고 개인주의적인
냉정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한마디로 적의에 차 있는 대답이었다.
* 예화
태조 이성계는 우물가의 여인이 목마른 그에게 쪽박 물위에 버들잎을 띄워드려,
그의 안해가 되고 왕비가 되는 영광을 차지하였다. 이런 인정은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서는 도저히 찾아 볼 도리가 없었다.
인정이 메마를대로 메말라 버린 것이 현대인의 문제가 아닐가 ? 그렇다면,
이 여인은 현대인의 삶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 예화 : 지옥방문 C H. Lewis의 글에서
지옥에 가 보니 그 인구밀도가 아주 희박한데 놀랐다. 집도 좋고 모든 환경이
좋은데도 놀랐다. 하도 이상하여 안내자에게 물었다. 여기가 정말 지옥입니까 ?
"그렇다" 고 했다. 지옥인데, 어떻게 이렇게 넓고 큰 저택에서 인적이 보이지 않는 곳에 모두들 넓직하게 자리를 차지하고들 있습니까 ?
안내자의 대답은, "예 처음에는 모두들 함께 살도록 가깝게 있게 했으나, 너무들
싸우고 다투는 바람에 이렇게 서로 못 맞나도록 떨어져 살게 된 것입니다.
저들은 이곳에 오자 마자 24시간도 못되어 싸움을 벌립니다. 오래 된 사람들일수록
더 지독하게 싸우므로 수백만 광년이나 떨어져서 아주 못맞나도록 떨어져 외톨이가 되어 살게 되었다. " 했다.
적의와 미움에 차서 사는 곳이 곧 지옥이다.
이 적의때문에 이 여인은 아무도 오지않는 12시를 택하여 우물가로 찾아 왔다.
예수님은 적의에 차서 사는 사람들의 삶의 마당 한가운데로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찾아 오신 분이십니다.
모든 적개심과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이시간 우리마음에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영접하십시다.
2. 두 번째 단계 : 동문서답의 대화 여인의 적의에 찬 대답에,
예수님의 도전 : 10절, 네게 물을 달라고 하는 이가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네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 알았더라면이 문제였다. 이 여인의 문제는 모르고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앞에 설 때에, 이 여인의 무지가 생생하게 들어났다.
가) 죄가운데서 사는 자기 인생이 가고 있는 종착역이 어디인지를 몰랐다.
야고보서 1 : 15절, "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ᅳ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 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 하나님의 아들을 맞나고 있음을 몰랐다. : 죄로 눈이 어두워질 때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물 한모금을 달라는 요청조차도 적의에 찬 마음으로 냉정하게 거절해 버렸다.
* 정말 이 이야기가 이 여인만의 이야기일까 ? 아니다 ! 오늘날 세상에 나타나고 있는 모든 말세의 징조들을 모르고, 죄와 욕심에 눈이 어두워 정신없이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는 결국 하나님의 보좌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델이다.
*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시는 그 현장에서 그의 물 한모금의 요청을 냉정히 거절하고 있지 않는가 ?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생수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24절에, 내게 있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현대인의 갈증을 해갈하는 영생의 생수를 주신다.
* 갈증 : 아무리 물을 마셔도 해갈되지 않는 갈증이 있다.
꿈속에 마시는 냉수, 오염된 물 (찝찔한 물, 갈증을 더한다.)
뉴욕커들은 뉴욕의 상수도의 물을 자랑한다. 과연 그렇다, 수질이 좋은 물을
마시고 사용하며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복받은 사람들이다.
석굴암 앞에 있는 생수를 마시면서 사는 사람들, 신선놀이를 하고 살고 있는 듯 했다.
* 야곱의 우물 : 지금도 완성되지 못한 예배당 지하실에 간직되어 있는데,
깊이가 25 m 쯤 되는데 밑바닥 10 m 는 자연석으로 되어 있고
위의 15 m 는 사람이 돌로 쌓았는데, 샘솟는 우물이 아니고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든 후 모여 저장되는 물이다.
유대인들은, 땅위 또는 땅밑을 흐르고 있는 물을 생수라고 했다.
이 고인 우물 물을 위하여 찾아 온 여인에게 주님은 신선한
흐르는 생수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 사실로, 여인의 삶은 묵은 물로 살고 있는 끝없는 갈증의 삶이었다.
여인이 보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 : 육적, 물질적인 것만 생각하는 일이었다.
1. 드레박 문제 -- 물을 깃는 수단은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자기의 손에 만져지는 실제적인 것들만이 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참된 문제는 손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마음, 심령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임을 이 여인은 몰랐다. 남자와 몸을 맞대는 것이 사랑이 아니고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참 사랑임을 몰랐다.
이것도 현대인의 삶의 태도를 잘 대표해 주는 삶의 모습이다.
돈이면 다라고 생각하는 물질만능주의적 삶은 결국 인생의 목마름의 극치를 우리에게 맛보게 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못한다.
2. 야곱보다 크냐 ? --- 조상의 전통, 인간의 업적과 능력에 매어 달리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우물을 발견한 조상 야곱보다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인본주의적인 사고는 인간이 곧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을 믿으라 ! " 는 것이다. 모든 수단이 다 끝난 후에도 인간들은 자기가 해결해
보겠다는 교만을 쉽게 내버리지 못한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정말 책임 질 수 있습니까 ? 약한 감기만 들어도 끙끙거리며 누워버릴 수 밖에 없는
존재이면서도 끝까지 내가 제일이라고 고집할 수 있습니까 ? 나의 건강, 자식들의 문제들, 세상에 산더미처럼 싸여가고 있는 인류의 죄와 악의 열매들에 대하여 정말 인류가 책임지고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
미국의 대통령이 세계를 지배하고 중재하는 힘이 막강하더라도 세계 각처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과 피흘림에 대하여 속수무책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 여인은 결국 끝없는 삶의 갈증을 야곱의 우물가에서도
풀어 볼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는 마침내 이성을 잃고, 빈정거리는 태도를 들어냈습니다.
" 그런 물이 있다면 내게 주어, 목마르지도 않고, 다시 이곳으로 물을 길러 오지 않게 하라 ! " 는 부정적인 대답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과 이 여인은 대화가 통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믿음이 생기지 않고 무감각한 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빈정거림으로
대답하고 있는 여인과 같이, 영적으로 눈이 멀고, 자기 교만에 빠져 있기때문이
아닐까요 ?
* 예화 : 성 프란시스와 한 창녀
성 프란시스가 Babylia Sultan 왕국으로 여행할 때, 한 창녀를 맞났다. 사탄이
그녀의 마음에 들어가서 성 프란시스를 유혹하게 하였다. 그 창녀는 성 프란시스
에게로 닥아와서 그와 동침해 주기를 요구했다. 성 프란시스는 부드러운 미소로
네가 나와 함께 침대로 가기를 원한다면 너도 나의 청을 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했다.
여인은 기꺼히, 무엇이던지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곧장 자기 집으로 가자 했다. 좋은 침대가 마련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 프랜시스는 " 아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 내가 더 이름다운 침대를
보여 주마 ! " 라고 말했다. 여인은 " 좋아요 가지요 ! " 라고 담대히 말하면서
따라 나섰다. 성 프랜시스 는 그녀의 집에서 불을 피우고 있는 큰 Fire Place로
데리고 가서, 옷을 훨훨 벗어 던지고 그 불속으로 들어가서 불꽃위에 누웠다.
그리고 " 이리로 들어오라 ! " 고 말했다. " 얼마나 멋지고 정열적인 침대이냐 ? "
" 어서 이리로 들어오너라 ! " 성 프랜시스의 몸은 하나도 상하지 않고 오래동안
불위에 누워 있었다. 이 기적을 보고 있는 동안, 그 여인의 모든 더러운 마음은
살아져 버리고 정결해져서,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다. 그후 그 여인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3. 세 번째 단계 -- 회개의 순간, 영안이 띄워지는 순간,
* 예수님의 정면 공격 : 16절-- " 네 남편을 데리고 오라 ! "
예수님이 오신 참 목적의 하나는 우리의 영안을 띄워주는 것이다. 영안이
떠야 자기의 죄를 알고 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없는 인생의 목마름과
죄악의 쇠사슬을 벗어버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이 여인처럼 말씀의 공격을 받아야 한다. 나의 자아가 깨어지고 나를 둘러싸고 있었던
죄악의 성이 말씀의 공격으로 무너져야 한다.
* 급습을 당한 여인 : 당황하여, 17절-- " 없다 " 고 대답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으나, 하나도 자기의 남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없었다. 현재 그녀가 동거하고 있는 자도 마찬가지 였다. " 없다 " 는 말만은
그녀가 처음으로 예수님 앞에서 말한 진실이었다.
거짓속의 진실이었다. 이 말속에는 자기의 부끄러움을 은폐해 볼려고 하는
여인의 의도가 숨어 있다. 그러나 당황한 가운데서 나온 그녀의 말은 그녀의
불쌍한 인생을 그대로 노출시킨 진실이었다.
주님의 말씀앞에서, 나의 비밀이 들어나는 때가 곧 구원의 때이다. 만천하에 들어
나는 것보다 더 분명하게 하나님의 심판대앞에서 들어나는 때가 곧 구원의 때이다.
예수님의 최후의 공격으로 마침내, 여인의 적의의 성, 빈정대는 부정적 사고의 성,
그리고 깊이 깊이 감추어 둘려고 했던 죄악의 성들이 모두, 왕창 무너지고 말았다.
드디어 여인은 예수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의 회개를 발표했다. 뿐만아니라 믿음을 고백했다.
19절-- "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
여인은 이제 예수를 알아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남이 말하는 예수가 아니고 내가 보고, 아는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다. 내가 아는 예수님을 모셔야 한다.
* 70이 넘은 노인 권사님의 말이다. " 교회에서도 돈이 없으면 자기를 멸시하는
사람들의 눈초리를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
나를 보시고 계시는 예수님의 눈초리를 의식해야지, 사람의 눈초리만을 의식해서야 되겠습니까 ?
지금 이 자리에, 주님이 오신다면 주님은 나를 어떻게 보실까 ? 그것이 우리의
최대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시라 ! "
고 하십니다. 우리의 교만과 욕심과 죄악으로 얼룩진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고 " 당신은 참으로 나의 주님, 나의 구주 ! "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라 ! 고 명령하십니다.
본문에 사마리아로 가야 하겠는지라 ! 라는 말씀의 뜻이 이제는 분명 합니다.
이 죄많고 가련한 여인을 구원해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멸시와 천대로
따돌림을 받아 온 역사적인 왕따 사마리아 사람들을 구원해야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이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의 땅에서 소외 당하고 변두리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 이민 교포들을 구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십시오 ! 그리고 그 분을 알아 뵙고 우리의 모든
인생의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십시다.
" 주는 그리시도이십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 라고 이 시간,
우리의 마음과 뜻을 다하여 주님께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십시다.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