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 9일 주일)

 

제목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

 

(본문 : 마태 23 : 29 - 39 절)

 

 

* 예화 :  다시 들쥐로 - 인도의 우화

 

  인도의 법력을 행하는 도사,  숲을 지나다. 까마귀에게 쫓기는 들쥐를 구해주다.

들에서 먹을 것도 별로 없이 고생하는 들쥐를 불쌍히 여겨, 집으로 데리고 와서 돌보다.  그런데, 고양이에게 또 쫓겨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고양이로 만들다.

--- 개로,   ----하여,  호랑이 까지 승격되었다.

그런데 호랑이가 된 이후에는 쫓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호랑이가 된 들쥐가

개를 쫓고, 고양이를 쫓고, 심지어는 들쥐까지 괴롭히는 것이었다. 더욱 괴씸한 것은

도사까지 무시하고 여차하면 도사를 죽여버릴려고 하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도사는 다시 그를 들쥐로 만들어 숲으로 쫓아 버렸다.

 

예수님을 배척하는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바로 이 들쥐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  맡 21장이 소개하고 있는 예루살렘에서 일어 난 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나귀타고 입성 - 성전청소 - 소경과 저는 자를 고침 - 무화과 나무 저주로 마름 -

 

이를 지켜 본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권세자들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가 ?

질문하다.

 

예수님의 대답

 

 * 악한 농부의 비유로 - 아들까지 잡아 죽이는 포도원의 소작농들,

 * 왕의 혼인잔치 초청으 거절하는 자들 -- 길거리에서 초청된 자, 예복없는 자 -      쫓겨남.

* 세금논쟁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등의 이야기들이 있다.

 

23장에 와서,  예수는 직설법으로 저들에게 향하여 정죄를 선언한다.

 

   " 화 있을진져,  외식하는 바리새인이여, 서기관들이여 ! "

 

* 당시 예루살렘은 더 이상 거룩한 성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원한 성도도 아니었다.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며 그를 십자가에 못박기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고 있었던 강도의 굴혈이요,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마귀의 도성이었다.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이 지적하고 있는 예루살렘성의 죄악을 밝혀보자.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또한 어떤 성인가 ?  사순절을 맞아 예수님을 생각하며,

그를 영접하여야 할 우리의 마음의 성은 또한 어떤 성인가를 헤아려 보자 !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던 예루살렘의 죄악들

 

가)  외식하는 자들의 도성

 

    맡 24 : 29 절, 이렇게 고발한다.

 

     화 있을진 져, 외식하는 서가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28 절,  이와같이 너희는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예수님을 못박던 예루살렘 사람들의 죄악의 특징 중 하나는 "외식" 이라는 것이었다.

 

외식이란, --- 겉을 꾸민다.  희랍어 = 히포크리시스 -- 무대에서 연극하는 것,

               바울의 서신들에는,  " 히포크리시 " 라고 했는데,  ---                           사람앞에서는 그런 체하나, 하나님앞에서는 그렇지않은 것을 뜻한다.

 

딈 후서 4 : 2 절,  --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

 

* 외식하는 자들의 관심꺼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가 ?  옳게 보일려고 겉을 꾸민다.  외모뿐만이 아니라,

  행동에서도, 사람들앞에서는,  거룩한 체, 선한 체, 사랑하는 척, 동정하는 척,

  이해하는 척, 용서하는 척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아니다.

  외식은 가장 큰 거짓의 표현 중의 하나이다.

 

   * 무디는,----- 거짓말은 수많은 죄를 일시적으로 덮어준다. 그러나, 결국                          들어나고 만다.

   * 루터는,----- 거짓말은 눈덩어리와 같다. 이것을 굴리면 굴릴수록 그 덩어리는

                  커진다.

결국, 외식은 사람의 눈을 무서워 하면서, 하나님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는 미련한 짓이다.

 

*한국의 체면아라는 것  --- 체면 때문에 얼마나 외식하는 습관이 많이 쌓여                                   있는지 ?  체면, 가문의 명예라고 말하면서, 얼마나

                             허례허식적인 것으로 쌓여있는지,--- 속이 텅빈                                   껍떼기만 남은 삶의 방식들이 우리를 뒤떨어지게                                  하고 있다.

우리 한국교회의 내용도, 사람들의 눈과 보이는 것들을 자랑하는 데 급급하고, 참된

신앙적 내용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토대한 구체적인 신앙생활을 살며, 그리스도의 인격을 이루는 성화의 생활에는  아주 뒤떨어지고, 소홀하게 하는 점이 많다.

 

당시 바라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수많은 종교의 의식이나 규정들을 자기들만이 지킨다고 자랑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를 보이고, 나타내기를 좋아하였다.

자기들의 외식으로 사람들의 감탄과 존경을 받기를 좋아했다.

이런 예루살렘의 외식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수는 폭탄선언을 퍼 부었다.  

 

* 예수의 눈에 비친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 (맡 23장에서)

 

 1. 천국 문을 막고 있는 자들 : 자기도 안들어가고 ( 맡 23 : 14 )

 2. 교인을 얻으려 다니다가 얻으면 배나 더한 지옥 자식들로 만든다.(15절)

 3. 소경된 자들-- 성전보다 금을 더 중시하는 자들, (맹서에 있어서) (16-18절)

 4. 회칠한 무덤 -- 겉만 꾸미고 안은 썩은 자들

 5. 선지자들의 무덤을 꾸미며, 하나님의 아들을 죽일려고 하는 자들이다.

 

예화 : 미이라 얘기,  (Howard Carter와 그의 일행의)

 

 애급왕 TUTANKAHAMEN의 무덤을 발굴하여 왕의 관을 여는 순간이었다.

 

1. 첫 번 관뚜껑을 열고, 그 안에 또다른 관이 있음을 발견.

2. 두 번째를 열자, 다시 금으로 입힌 관뚜껑이 들어났다.

3. 다시 그것을 열자 순금 관뚜껑이 나타났다.

4. 마지막 것을 열자 금 Mask로 쌓여있는 왕의 시체가 있었다.

5. 금옷과, 금Mask를 벗기자, 까맣게 말라빠진 쪼그러든 왕의 시체가 미이라가 되어    나타났다.

 

*외식하는 자들, 사람에게 잘 보일려고 꾸미고 싸고, 인기를 위하여 모든 수단을      다한다. 그러나 실상을 벗겨보면 말라빠진 썩어진 몸둥어리 밖에 들어날 것이 없다.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기 위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이런 자들이

 예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성도 예루실렘의 실상이었다.

 

*오늘날 말세를 가르키는 징조중에 하나는  인간들의 "과대망상증"이라는 것이다.

 무조건 크고 굉장한 등치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속이 썩어 들어가는    것은 생각치도 않고 무작정 커야만 한다는 생각들이다. 이런 것들이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에서 진을 치고 있었던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의 후예라는 것을 간파해야     한다.

 

* 바울의 선교지 답사 여행에서 (1994년 2월)

 

  로마시대의 찬란한 문화의 흔적들, 로마황제의 위력이 안미친 곳이 없었다. 그러나

황제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황제숭배 그 자체가 이미 속으로 썩어 문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얼마후에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흔들어 땅속 깊이 묻어버렸다. 2000년후에야 발굴되어 그 흔적을 보게 되었다.

 

외식하는 자들이여, 예루실렘에 있는 썩어빠진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책망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하며, 거역하는 예루살렘

 

  마태복음 23 : 37절,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이 바라보고 있는 예루살렘은 결코,

 

1. 기도와 찬송이 있는 성전의 도성이 아니었다.

2. 참된 감사와 희생제물이 들여지는 예배의 도성도 아니었다.

3. 계시와 말씀이 들려지는 하나님의 축복의 도성도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께 등을 돌려대고 배신과 반역을 일삼는 패역한 자들의 도성이었다.

이제 저들은 선지자들을 돌로 치다 못하여 하나님의 독생자까지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려고 하는 반역의 극치에 도달한 악한 도성이었다.

포도원을 찬탈코자 아들을 죽일 준비를 완전하게 갖추고 기다리는 반역괴 죄악의 도성이었다.

이미 저들의 마음속에서, 성도 예루살렘은 화평과 희락이 넘치는 축복의 도성에서

돌위에 돌하나 언져져 있지 못하는 저주와 피흘림과 파멸의 도성이 되어버리고 있었다.

예수님은 이런 에루살렘을 암탉이 병아리를 그 날개아래 모으듯이 모으려고 수없이 노력했으나 저들은 오직 거역하고 반역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한 것이 바로 예루살렘의 큰 죄악이었다.

 

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사랑을 거절했을까 ?    

" 제것 " 이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었다.

제것으로 만들려고 할 때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 아들조차도 죽여버릴려고 하는 악한 생각에 사로잡히고 만다.  이런 생각들이  종교지도자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찾아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하게 배격하고 마침내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마는 악행을 저지르게 하였다.

 

맡 21 : 23 절에, 성전을 청결케 하는 예수께,   대제사장들은

 

"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가 ? "  라고 물었다.  

 

구약의 모든 사상을 종합하여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다면, 분명히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먼저 오실것이 분명하다.  예수님도 성전을 가르쳐, "내 아버지의

집" 이리 하셨다.  그러나 성전을 점령하고 있었던 무리들은 예수의 개입을 절대로 허락할 수 없었다.   성전의 그 큰 이권때문이었다.

 

교회안에서도 이 특권싸움이 얼마나 치열한가 ?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다 해도 몰아낼 특권그릅들이 오늘 날에도 얼마든지 교회안에 도사리고 있음을 찾아 볼 수 있다.

 

아들을 거절하는 예루살렘은 멸망할 수 밖에 없다.  

맡 23 : 38 절에, -- 보라, 너희 집이 황페하여 버린 바 되리라. 고 말씀하셨다.

주님을 거절한 예루살렘은, 망할 수 밖에 없다.  주님을 거절하는 교회도 망할 수 밖에 없다는 진리를 배워야 한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성은 로마황제 Titus에 의하여 완전히 망해 버린 것을 역사가 알려준다.

 

 

다) 음모를 꾸미고 예수를 십자가에 달았다.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께 대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한결같은 행위는 예수를 잡아 죽일 음모였다.  예수를 죽이기 위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다.

이 음모야말로 예루살렘 죄악의 극치였다.

 

맡  26 ; 3 절,----- "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아문에 모여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니

말하기를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

 

맡 26 : 48 절, ---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하였는지라.

 

예수를 잡기 위하여 짜낸 음모는 사탄의 종합예술이었다.  빈틈없이, 모든 수단과

자기의 인원을 다 동원하여 꼼짝 못하게 짜여진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대로 치밀하게 실행 된 작전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 아무리 교묘하고 치밀하게 짜여진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포도원 농부들의 악한 죄악의 극치에 지나지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동원된 모든 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사탄에게 속아 넘어 간 인류역사상 최대의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것이었다.

 

지옥으로 직행하게 하는 마귀의 얕은 꾀에 넘어간 어리석은 짓에 지니지 않았다.

예수의 제자 가룟 유다는 그중에서도 가장 비참하고 어리석은 배역을 맡아 실행했다.

 

맡 21 : 4 - 5 절,----- 은 30량을 대제사장에게 돌려주며,  "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다 하니,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  네가 당하라 !

하거늘, 유다가 성소에 은을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고 했다.

 

죄는 같이 음모하고 지었지만 그 죄의 책임은 절대로 함께 질려고 하지 않는다.

죄의 동지는 동지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죄의 본질이다. 언제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할려고 한다.

 

거륵한 성 예루살렘은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최악의 도성이 되었고 무법자의 소굴로 변해 버렸다.

 

이런 참혹한 예루살렘의 장래를 내다 보시면서 탄식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 보라 !

 

맡 23 : 37,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 선지자를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사순절 넷째 주일을 맞으면서, 예수님을 얼마나 생각해 보셨습니까 ?  그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하십니까 ?      예루살렘을 향한 그의 탄식의 뜻을 이해 하십니까 ?

 

주님이 지금 우리에게 오신다면,  

" 부르크린연합감리교회여, 부르클린연합감리교회여 ! "

이렇게 탄식하시지는 않으실런지요 ?

 

주님을 다시 한번 새롭게 영접하십시다.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주님앞에

내어놓고 회개하십시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자리까지 나아가십시다.

 

부활절 아침에 내려주시는 부활의 새생명을 우리 모두가 함께 받을 수 있도롯

다함께 회개하며, 주님을 영접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축원합니다.

 

아멘.